'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매우 친숙한 격언이지만, 우리나라 전통 속담 같지는 않다.
이 말의 출처는 뭘까?
답은 새뮤얼 스마일즈(1812~1904)라는 영국 작가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본래 의학을 공부했지만, 요즘으로 하면 '자기계발서'와 그에 관한 '강연'들로 더 유명해진 인물이다. 유명한 격언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은 그의 책 <자조론>(Self-helf, 1859)의 첫 구절이다.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책은 잘 모르고 학교 수업이나 교회 설교 등을 통해 저 격언만 아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자조론>은 1859년 초판 출판 이후 당시 영국에서 꽤 인기가 많았던 베스트 셀러였다. 1859년이라는 숫자에 주목해보자. 이 년도는 그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自由論, On Liberty, 1859)>이 출판된 해이기도 하다. 밀의 <자유론>이 약 3개월 가량 먼저 나왔는데, 새뮤얼 스마일즈의 책과는 출판물로서라면 일종의 경쟁 관계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상의 내용에서 두 책이 그리 대립한 것은 아니었는데, <자조론>에는 밀의 구절이 인용되어 있기도 하다. <자유론>과 <자조론> 은 영국의 전성기인 '빅토리아 시기'(1837~1901)의 영국 정신을 특징짓는다.
자조론의 흥망성쇠
스마일즈의 <자조론>은 한 마디로 산업 혁명기의 노동윤리였다. 주로 중산층과 노동계급에게 개인의 자기 책임 정신을 강조하는 윤리관으로 사회 구조나 시스템에 비해 개인의 특성을 강조하는 개인주의적 가치관에 속한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의 사상은 서구의 경우, 20세기 초 집산주의(集産主義, collectivism)가 대두되면서 쇠퇴한다. 집산주의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강조하며 개인을 국가 사회 계급 등에 종속시키는 집단주의적 관점을 깔고 있으니, 개인주의적인 자조론과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70년대 영국병을 마거릿 대처가 신자유주의로 다스리는 과정에서 '작은 정부론'과 함께 다시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영국에서의 흐름으로, 뒤늦게 서구화를 시도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전개 추이가 동일하지 않다. 일본, 중국, 그리고 조선은 서구보다 뒤늦게 근대화를 시도했으며, 각자 나름의 관점에서 이 스마일즈의 '자조론' 사상을 수용하게 되었다. 책만 놓고 보면 일본에서는 나카무라 마사나오(中村 正直, 1832~1891)가 스마일즈의 원서를 '서국입지론'(1871)으로 번역하고, 중국에서는 그 책의 이것의 일부를 양계초(량치차오)가 '음빙실자유서'에 수록. 이것을 조선의 김항기가 번역 소개하게 되었다는 것.
일본에서 이 자조론, 즉 '서국입지론'은 만 엔짜리 지폐 모델로 유명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저서들과 함께 메이지 시대 사상 교과서로 여겨진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경우 <학문에 대한 권유>(학문을 권장함)에서 일신독립(一身獨立)하여 일국독립(一國獨立)한다는 말로도 유명한데, 확실히 근대화 후발주자인 메이지 일본의 시대 정신이 읽힌다.
식민지 조선은 김항기의 소개로 자조 개념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박은식, 신채호 등이 필진이었던 대한매일신보(1904)에 '자조자 천조'(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경구가 자주 실린 것이 확인된다.
차경삼은 “자조자(自助者)라야 천조(天助); 스스로 돕는 자라야 하늘이 돕는다”란 문제로 연설하므로
(출처. 근대 뉴스 http://www.19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2)
조선의 경우 자조론의 가장 충실한 번역은 최남선의 것으로 평가되며, 자조론은 배제학교 등 기독교 계통 학교의 실천 덕목으로 수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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