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홍자성(홍쯔청), 북타임.
저자는 명나라(16세기)의 학자 홍쯔청, 홍자성이다. 옛날 우리의 서당에서 ‘명심보감’ 등과 함께 교육되었던 격언집으로, 그 내용은 주로 처세에 관한 것이지만, 자연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에 관한 주제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채근담’이라는 제목은 송나라 때 어느 학자가 '사람이 딱딱하고 질긴 야채 뿌리를 씹듯 힘든 역경을 견디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한 것에서 유래했다 한다. 제목이 암시하듯, 본문의 여러 글들을 보면 대체로 정직, 검소, 마음의 여유, 겸손 등의 덕목들이 강조되는 편이다. 이런 주제들이 그 자체로 나쁠 거야 없지만, 개인적으로 읽는 데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한다. 흔한 자기계발서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좀 더 내 눈길을 끈 것은 다음의 대목이었다.
“사리사욕만 앞세우는 사람을 바로잡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는 있어도, 이론을 앞세우며 자기 생각만 밀어붙이는 사람은 가르칠 방법이 없다.” (전집 190)
올바르지 못한 행동의 동기가 이기심이라면 여기에는 해법이 있지만,
그러나 그것에 ‘이치’를 덧붙여 정당화하려드는 경우에는 대책이 없다는 말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스스로를 ‘정의’, ‘올바름’ 등의 명분으로 미화하길 좋아하는 네티즌들을 떠올렸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려면 동기나 명분 외에 실제적 과정과 결과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오직 명분과 관념만으로 자신의 행동과 주장을 정당화하려 든다. 최종적으로 평가할 때는 정의와 별 상관이 없는데도, 말로는 스스로 정의롭다 하는 것이다.
돈 욕심에 강도, 절도를 벌이는 이들의 경우, 적어도 그들의 행동(악행)과 뜻(악의)은 일치한다. 이에 비하면 이론을 앞에서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이들에서 행동(결과적 악행)과 뜻(선의)은 불일치한다. 게다가 그들은 스스로가 그렇다는 줄은 모르므로, 그들의 위선은 무의식적이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논쟁들을 보다보면, 이런 부류 때문에 정신적 피로감이 들 때가 많다.
채근담의 저자는 어쩌면 당시의 논객, 논자들의 행태들을 보고 이 구절을 남겼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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