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북리뷰]루이스 세뿔베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원제 Luis Sepúlveda (1949~2020), The Story of a Seagull and the Cat Who Taught Her to Fly, 1996
초등국어 교과 수록도서 (초등국어 5-1 나 8단원)
어느 날 갈매기 '켕가'가 검은 기름을 잔뜩 뒤집어 쓴 채, 발코니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고양이 '소르바스' 옆으로 떨어진다. 도대체 하늘을 나는 이 새는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을까? 바로 인간이 바다에 버린 기름 때문이었다. 유조선에서 사고로 흘러나온 기름이 청어 사냥을 하던 갈매기에 들러붙은 것이다.
갈매기 켕가는 가까스로 탈출에는 성공했지만, 모든 힘을 다 써버린 탓에 죽게 되고 만다. 죽기 전 켕가는 소르바스에게 세 가지 부탁을 한다.
1) 알을 먹지 말 것
2)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알을 지켜줄 것
3) 새끼가 태어나면 나는 법을 지켜줄 것
이 세 부탁을 소르바스가 지켜나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중심 내용이다.
현실에서는 고양이가 갈매기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고, 갈매기 알이나 새끼갈매기를 보호할 일도 거의 없다. 간혹 호랑이가 돼지를 보호하거나, 개가 새끼 고양이을 자식처럼 키우는 등 예외가 있지만, '예외'는 늘 '일반적 현상'이 있을 때나 성립하는 거다.
이처럼 자연의 본성을 뒤틀어 놓은 비현실적 설정은 작품 자체가 몇 가지 교훈과 철학적 성찰을 유도하는 우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존과 공생의 삶
첫째로, 가장 중요한 작품 속 교훈은 공존과 공생의 삶이다.
공존이란 무엇일까? 오늘날 여러 인문학적 담론을 살펴보면, 공존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라는 두 방향에서 성립한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깨지면 환경파괴와 같은 생태학적 문제가 생기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존이 실패하는 경우가 전쟁이라는 폭력의 문제, 그리고 불평등과 같은 경제적 문제로 나타난다.
이 이야기에서, 어미 갈매기 켕가가 기름을 뒤집어 쓴 사건, 그리고 모험가 고양이가 비판한 인간의 환경 파괴 문제 등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실패한 경우들을 상징한다. 사실 주인공 소르바스가 속한 항구 마을 고양이 사회에는 고양이와 인간의 소통을 금지하는 금지, 규율이 있었는데, 이런 게 생긴 이유도 결국 인간이 자연의 동물들을 마음대로 가두고 지배하려 든다는 점에 있었다.
한편 인간들 사이의 폭력과 다툼의 문제가 동물들 사이의 관계로 비유되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소르바스 동료들과 대립된 두 집단, 건달 고양이들과 하수구 쥐떼들이 이 점을 나타내는 장치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소르바스의 의지와 반대로 갈매기 알과 태어난 갈매기 새끼 아포르뚜나다를 호시탐탐 노리는데, 인간 사회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다. 가까운 역사에서 확인되는 전쟁,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가 그렇고, 주변에서 볼 수 있듯 늘 타인을 지배하고 착취하려드는 소시오패스 유형들이 또 그렇다.
반대로 공존의 시도를 보이는 집단인 주인공 소르바스 일행으로, 이들은 한 고양이의 약속이 전체 고양이 사회의 문제라는 공동체 의식을 기반으로 부모를 잃은 새끼 갈매기 아포르뚜나다의 가족이 되어주기로 한다. 이야기 중간에, 성격이 별로 안 좋은 '마띠아스'라는 원숭이가 아무 것도 모르는 아포르뚜나다에게 출생의 비밀과 갈매기의 정체성을 폭로해버리는데, 충격에 빠진 아포르뚜나다를 위로하는 소르바스의 말에 이 핵심 주제가 잘 드러난다.
고양이로 키울 생각 없고 갈매기로 키울 거라고, 그러니 나는 법을 연습하자고. 거기에 너의 행복이 있다고.
이 본능을 넘어서는 숭고한 애정은 고양이 사회를 인간과의 협동으로도 이끈다. 고양이들은 인간에 대한 심각한 불신 탓에 인간과 교류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친다는 목표가 연이어 실패하고,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합의가 얻어지자 과감하게 금기를 깬 것. 이는 폐쇄적 공동체의 규율을 깨는 열린 마음을 보여준다.
백과사전 지식의 한계와 개인의 의지의 중요성
두 번째 교훈은 조금 미묘한데, 첫 번째 핵심 주제와 긴밀히 연관된다. 그건 바로 일의 성취와 행복을 위해서는 공동체의 단합이나 백과사전의 지식 이전에 개인 각자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
작품 속에서 고양이들은 날개란 걸 단 한번도 달아본 적도 없으면서 새끼 갈매기의 비행 교사 일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이 처음 의존한 것은 바로 백과사전의 지식이었다. 소르바스의 동료들 중에서는 사벨로또도라는 만물박사가 있었는데, 이 고양이가 백과사전에서 유체역학 등 비행술에 관한 어려운 지식들을 찾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새끼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칠 수 없었는데, 독자 입장에서 해석해보자면, 아무래도 그런 비행지식은 생명체의 날개와 다른 기계의 날개에 관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고양이들은 금기를 깨고 인간들 중 믿을 만한 시인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었는데, 시인이 문제를 해결한 방식은, 돌이켜 보면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다. 새끼 갈매기 아포르뚜나다를 그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게 하는 것. 사실 만물박사 고양이 덕분에 소르바스 일행은 백과사전에서 갈매기에 대한 이런 저런 지식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인은 이들이 백과사전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진실 하나를 알려주는데, 바로 갈매기들이 악천후 속에서도 용기와 평정심을 잃지 않으며 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저자 세뿔베다는 이를 백과사전의 과학적 지식이 아닌 어느 시인의 시를 통해 드러내도록 설정해 두었다.
결국 아포르뚜나다가 비행에 성공한 것은 폭우가 심하게 쏟아지는 어느 날 밤 높은 종탑에서 다이빙하는 방식을 통해서였다. 다만 이 방식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 하나를 필요로 하는데 그건 바로 본인의 의지였다. 이 교훈은 "날려고 노력하는 자만이 날 수 있다"는 소르바스의 말로 형상화된다.
이 이야기는 우화적 성격을 가지는 만큼 주의 깊은 독자들은 이 두 가지 교훈 외에도 몇 가지를 더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독창적, 창의적 독해가 가능한 것이 바로 우화적 소설의 묘미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위에 적은 둘 외에 몇 가지 교훈적인 내용들이 보였다. 사실 이런 방식의 독서는 읽는 이의 경험 및 독서 이력에 따라 매번 달라질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 책처럼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볼 수 있는 동화가 주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