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가설, 감각질(qualia),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
1. 놀라운 가설
제세문 (가)의 ‘놀라운 가설’은 제임스 왓슨과 함께 유전자(DNA)의 분자 구조를 공동 발견한 프랜시스 크릭(1916~2004)의 가설이자 책 제목을 말한다. 이미 이전 저서 『얼마나 미친 추구인가』에서부터 과학과 종교의 관계의 문제를 다룬 크릭은 종교에 대해 철저히 비판적 시각을 유지한다. 그에 따르면 종교는 과학의 일을 그르칠 수 있으며, 과학의 임무 중 하나가 바로 종교의 오류에 대항하는 것이다. 『놀라운 가설』의 부제는 ‘영혼에 대한 과학적 탐구’이다. 과거에는 영혼을 물질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 간주하는 전통이 지배적이었다. 가령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영혼을 비연장적인 것으로, 몸을 연장적인 것으로 보고 그 둘을 서로 구분하는 이원론을 주장했다. 크릭은 이러한 전통적 영혼 개념에 반대하면서 뇌가 마음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에 관한 유물론적 가설을 지지한다. 그에 따르면 심리 상태들은 뇌의 상태들에 대한 연구로 설명될 수 있다.
2. 감각질(qualia)
심리철학 분야에서 ‘감각질’은 대상 지각에 동반되는 감각적 혹은 정서적 상태, 기분, 심상 등을 지칭한다. 외부 대상이 객관적이고 모두에 의해 관찰 가능한 것이라면, 그 대상을 지각할 때 느껴지는 감각질은 오직 지각하는 주체만이 인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즉 일인칭적이고 주관적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감각질이 환원주의의 시도를 막는다는 지적은 감각질이 일인칭적이고 주관적이어서 타인의 심적 상태와의 비교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과학이 심리 상태에 대해서도 가능하려면 여러 개인의 심리 상태들을 서로 비교해야 하는데, 각각의 감각질은 객관적이지 않으므로 그러한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3.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
‘쉬운 문제’, ‘어려운 문제’라는 용어는 심리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rmas)의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이러한 문제 구별은 바로 감각질 개념에서 야기된다. 위에서 말했듯 감각질은 일인칭적이고 주관적이라는 특징 때문에 객관적이고 삼인칭적인 물리적 사실과 구별된다. 과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이들 중 일부는 이 둘의 차이를 무시하고 주관적 심리 상태가 객관적 물리 상태로 모두 설명된다는 환원주의를 택한다. 이에 차머스는 심리학 및 신경과학이 답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눈다. 그에 따르면 뇌의 정보 통합 방식, 인간의 감각-운동 기제 등 인지체계의 객관적인 메커니즘에 관한 문제는 ‘쉬운 문제’로, 간단히 말해 과학이 답할 수 있는 문제이다. 반면 뇌의 물리적 작용이 주관적 감각 경험(감각질)을 야기하는 방식에 관한 문제는 ‘어려운 문제’로서 과학이 답할 수 없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