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북리뷰]로빈 스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The Gaslight Effect> : 가스라이팅 문제를 푸는 암호집

lefeu 2022. 7. 2. 12:48

로빈 스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The Gaslight Effect>, 신준영 역. RHK코리아. 2018.

리프 블로워와 가스라이팅: 개념 고안의 중요성

 아마도 여러분은 공원이나 도로, 관공서 등에서 미화원들이 낙엽을 치울 때 쓰는 기계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후라에 손을 댄 폭주족 오토바이처럼 굉음을 내는 이 기계는 청소부들이 빗자루로 낙엽을 쓸어내는 수고를 덜어준다. 그러나 이 기계에는 그런 효용만 있는 게 아니다. 소음이 워낙 심하고, 또 작업자가 보행자들을 향해 부주의하게 기계를 사용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에 은근히 민원 제기를 자주 불러 일으킨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서도 그저 길을 걷고 있을 뿐인데 이 송풍기 바람을 느닷없이 맞고 기분이 상했던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분명 청소부들이 편리하게 작업하기 위한 기계라는 건 알겠지만, 도대체 누구의 이익을 위해 우천에까지 나와 어차피 계속 떨어질 낙엽에 바람을 쏘아대는지도 의문이며, 주변 보행자들에게까지 함부로 바람을 쏘아 붙이는 그 기계가 뭔가 기분 나쁘게 느껴지지만 그 불쾌감이 말로 분명히 표현되지는 않는다. 

 사실 그 기계의 피해자는 당신 한 명이 아니다. 그 기계의 소음은 굉장히 먼 거리까지 장시간 발생하고, 또 보행자를 의식하지 않고 기계를 휘두르는 작업자는 어느 한 사람만을 겨냥해서 그런 무례한 행동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기계에 불만을 가질 사람들의 수는 생각보다 적지 않다. 그런데도 민원 게시판과 같은 온라인 공간에는 다른 이슈에 비해 이 문제를 말하는 사람들 수가 적은 편이다. 배달 오토바이 소음만 해도 꽤나 화제가 되는데도, 비가오나 눈이오나 학교, 관공서, 도로 인근의 주택가에 매일같이 집요하게 울리는 그 기계의 소음은 덜 거론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그 기계의 이름을 모른다는 데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기계를 단순하게 송풍기라고 부르고, 또 누구는 그걸 '낙엽 청소하는 기계'라고 부른다. 사람들 사이에 어떤 합의된 이름이 없다 보니, 애초에 민원을 제기할 집단이 형성되지 않고, 그에 따라 배달 오토바이 소음과 같은 다른 사안들에 비하면 시민들의 민원이 강하게 일어나지도 않는다.    

북미에서는 이걸 그냥 leaf blower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반면 북미의 경우 'leaf blower'라는 합의된 이름이 통용되는지, 이를 둘러싼 소송이나 갈등에 관한 기사들이 비교적 더 눈에 잘 띈다. 

 이런 의미에서 가스라이팅이라는 신조어의 유행은 그 동안 피해자인지도 몰랐던 피해자들에게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이 말은 1938년 패트릭 해밀턴의 연극 <가스등(Gaslight)>에서 왔다. 보석을 훔치기 위해 윗집 부인을 살해한 남편이 보석을 찾기 위해 위층에서 불을 켜면, 당시 건물 구조 상 아내가 있는 아래층의 불이 어두워지면서 인기척이 발생하는데, 자신의 범행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남편이 아내를 과민반응하는 사람으로 몰아가며 판단력을 마비시킨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많은 이들은 이 연극보다는 잉그리드 버드만이 출연한 영화 <가스등>(1944)으로 해당 내용을 접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로빈 스턴은 컬럼비아대학교 사범대 교수이면서 정신분석가이자 심리치료사로 활동했고, 이 문학적 설정으로부터 오늘날 쓰이는 가스라이팅 개념을 최초로 고안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가스라이팅이란 한 마디로 정서 조종을 통한 학대를 의미하며, 그 방식은 주로 상대방의 판단력을 무시하는 언사에서 성립한다. 가스라이터들은 노골적으로 비난하거나 죄책감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상대방의 판단력을 비하하는데, 이 때 상대방이 가족, 연인 같은 신뢰 관계에서 가스라이터를 신뢰한 상태라면, 그는 그런 가스라이팅에 자기도 모르게 동의하게 된다. 실제로 가스라이팅의 피해자인 많은 사람들은 이런 설명을 듣자마자 거의 곧바로 그게 자신의 이야기라는 점을 느낀다. 그들에게는 마치 'leaf blower'와 같은 합의된 단어가 없었기에 자신들의 경험을 자각하고 공유할 생각을 못했던 것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가스라이팅이라는 개념이 아직은 엄밀한 의미의 학술적인 용어로 정착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학문은 특유의 보수성 탓에 장기간의 검증을 통해 대상을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들은 당장 자신의 행복을 위해 고통을 처리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학문에 앞서 비유나 이미지 등에 의해서라도 용어를 고안할 필요가 있다.

가스라이팅의 방식

 로빈스턴의 이 책은 현실의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에게 자기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고 그에 대응하는 지침들을 제시한다. 그들에게 가스라이터는 하나의 적이며, 적에게 대항하려는 자는 바로 그 적의 방식을 면밀히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의 방식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일단 가해자는 사실관계를 망각했다고 말하거나 상대방의 입장을 경시하는 방식으로 상대의 판단을 거부한다. 가족이나 연인 관계에서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가 대체로 여기에 있다. 또 직장이나 다른 사회적 관계 속에서 공개적으로 상대를 조롱하면서 피해자를 예민한 사람으로 후려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1. 불신(자기의심),  2. 자기뱡어(자기가 옳다고 증명하기), 그리고 3.억압이라는 수순을 밟는다. 저자에 따르면 3. 억압의 단계는 쉽게 말해 이미 휘둘린 상태이다. 대체로 가스라이팅의 피해자(가스라이티)는 가해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심리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사실 바로 그것이 가스라이팅이 쉽게 작동하는 조건이다. 그렇다 보니 피해자는 자기 자신의 이해보다는 가스라이터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려는 부당한 자기 희생의 태도에 빠져 버린다. 

 가스라이팅 피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가해자로부터 온전한 인격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므로, 피해자는 '자기 요구'라는 것을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하거나 자각조차 못하게 지배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렇게 상대의 말에 납득한 것 같아도, 피해자는 실제로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다. 가족이 있는 본가나 직장 사무실, 학교 처럼 문제가 생기는 공간에 갈 때마다, 피해자는 극도의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가스라이터의 특징 

 그렇게 타인을 지배하는 가스라이터들은 기본적으로 자기확신이 대단히 강한 나르시시스트들이다. 그들은 자기말이 다 옳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상대방에게 어떻게든 관철시키려 든다. 물론 그 방식은 매우 다양한 모양새를 띤다. 이해득실을 따지는 고의적 방식일 수도 있고, 애초에 소시오패스의 수법일 수도 있다. 또 난폭한 유형과 매력적 유형이 갈리기도 한다. 그러나 공통점은 상대방의 약점을 건드리고 그걸 스스로 인정하도록 만든다는 데 있다. 

 이는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의 경우와는 다르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인질 피해자가 인질범에게 공포나 증오의 감정을 느끼는 대신 애착이나 온정을 느끼는 케이스를 가리킨다. 얼핏 보면 가스라이팅의 경우와 비슷해보이지만 사실 이 스톡홀름 증후군은 반드시 정서 조작을 통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범죄자가 인질범에게 진실로 친절하게 대하는 등, 아무런 정서 조작 없이 동정심을 얻는 방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팅은 가해자 쪽의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심리 조작으로 이루어진다.

 그 때문에 가스라이팅은 매우 악랄하다. 심리 조작을 시도하는 이들은 그저 자신의 감정에 대한 존중만을 요구할 뿐인 피해자에게 되려 '너무 예민하다'는 말을 던진다. 실제로 주장이 강한사람은 본인인데, 어느 틈에 피해자가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 되어 있기 일쑤다.

가스라이팅에 대처하는 방법 

 그렇다면 어떻게 가스라이팅을 예방하거나 해결할 것인가? 저자는 건전한 관계와 가치관의 확립을 강조한다.  

1. 가족이나 연인과 같은 가까운 사이에서, 사랑은 당위이지 사실이 아님을 기억할 것.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착각한다. 가스라이터인 직장 상사는 후배에게 심리조작을 시도하면서 '이게 다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한국 사회처럼 가족주의 전통이 강한 사회에서는 '부모 마음'이라는 만능 치트기도 없다. 부모가 자식에게 어떤 언행을 하든, 그건 모조리 자식을 위한 것이다. 저자가 비판하는 게 바로 그런 뻔뻔한 사고방식이다. 원제 The Gaslight Effect를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라고 번역한 건 이 책의 주제를 매우 정확히 표현하는 셈이다. 상대가 아닌 자기만을 위한 심리조작은 사랑이 아니다. 이 점은 기본적으로 가스라이터들이 숙지해야 하지만 피해자 측도 명확히 인지해 두어야 자기 포지션을 잘 잡을 수 있다.

 2. 기대에 대한 책임은 기대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는 사람의 몫이다. 많은 부모 가스라이터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로, 이는 앞서 말한 잘못된 사랑 개념에 토대를 둔다. 상대를 위하지 않는 기대는 본인의 이기심일 뿐이며, 그 이기심 때문에 받는 괴로움은 본인 책임이다. 당연히 피해자들은 그 책임을 스스로 떠안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3. 피해자는 자기 역할을 분명히 인지할 것. 요즘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이름 하에 피해자들에게는 어떠한 책임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들이 인기를 끄는 듯 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로빈 스턴은 자기비하를 부추기는 책임이 아닌 어떤 중요한 피해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관계는 일종의 탱고와 같다. 즉 피해자 본인이 자기 자신의 움직임 분량을 자각하고 때에 따라 유연하게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인정에 달리지 않은 자아 정체감"을 피해자 본인이 확고하게 가지는 것이다. 가스라이팅은 기본적으로 가해자의 잘못이지만, 많은 경우 가해가 쉬워지는 조건은 피해자의 정신적 자립이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따라서 피해자가 가스라이팅 극복을 위해 신경써야 할 점은 자아를 타인의 인정으로 채울 생각을 버리고 정신적 수준에서 자립하는 것이다. 과도한 나르시시즘이 가스라이팅 가해자를 만든다면, 그만큼 자의식 부족이 피해자를 만들기에 피해자로서는 자아의 강도를 적정 수준 이상으로는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한 가지는 적정 수준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이 때의 거리는 일단 심리적인 거리를 뜻한다. 가스라이터들의 심리 조작 행위는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가 어떻든 결국 상대방을 장악해서 얻는 정서적, 물질적 이득을 노리는 짓이다. 가스라이터가 부모라면 '알겠는데,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한다'는 식으로 심리적 거리감을 내비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심리적 거리를 만드는 구체적인 방식은 물리적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가스라이팅에 취약한 청소년 계층은 경제적 독립을 위한 플랜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남들보다 경제적 독립을 빨리 이루는 게 고단하고 억울하게 느껴지겠지만 심리적 통제로 인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한국 사회처럼 동아시아 유교 전통에 이어 붙여 세워진 국가들은 가스라이팅에 대단히 우호적인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다. 모욕감 느낀 사람에게 '그게 사실이 아니다'라 말하도록 허용하는 이유들이 너무 많다. 이른 바 '독친'(毒親, toxic parents)들이 내세우는 '부모마음' '어른 마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등의 사고방식들이 그것들이다. 평소 이런 문제의식을 어렴풋하게라도 느낀 이들에게는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개인적인 경험들을 푸는 하나의 암호풀이집을 보는 느낌일 것이다.